막걸리를 공포의 단어 ‘드렁큰 라이스’라니!

한국인들이 R발음과 L발음의 구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용식인 쌀(RICE-으롸이스)이나 이(LICE-라이스)가 모두 라이스여서 쌀은 이(lice)가 된다. 막걸리를 외국인들을 위해 ‘만취한 이’라고 부르겠다고? 더구나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자랑스레 ‘드렁큰 라이스’라고 소개할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다 철렁했다.

미국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무섭게 다루는 법이 있다면 음주운전(Drunken)이다. 법에서 정한 양을 초과해 마셨을 경우에는 즉시 수갑을 채워 감옥소로 보낸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를 사는 등 그후 물질적 정신적 고통은 상상조차 힘들다. 그런 이유로 누구나 운전을 하고 사는 미국에서는 ‘술 취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Drunken’은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공포의 단어다.

어찌 미국뿐이랴? 술이 생활이 되어버린 우리와는 달리 밤 문화도 없고 취하는 것이 기싸움이나 자랑은 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민족상잔의 비극을 불러 온 6.25 6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때 참전했던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여러 이미지 중 잊지 못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어떻게 작은 사람이 A frame(지게)에 그렇게 많은 짐을 싣고 갈 수 있느냐는 것과 너도나도 햇빛에 앉아 웃통을 벗고 이(lice, 사람의 몸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 먹는 이)를 잡던 모습이다.

나쁜 기억이란 원래 더욱 집요하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옛 기억이 더욱 또렷해지기 마련이다.

라이스는 쌀을 먹고사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속어
피 빨아 먹는 술취한 ‘이(라이스)’로 부르라고

 
더 큰 문제는 한국인들이 R 발음과 L 발음의 구별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용식인 쌀(rice-으롸이스)이나 이(lice-라이스)를 모두 라이스라고 부르니 쌀은 이가 되고 이가 쌀이 된다.

며칠 전 나는 농림수산식품부 ‘막걸리 영문애칭 공모’의 결과 발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막걸리가 쌀로 만든 술이라는 것을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다’는 이유와 한국의 대표 술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에 막걸리를 ‘드렁큰 라이스’로 선정했다는 기사였다.

무엇이? 막걸리를 외국인들을 위해 ‘술 취한 이’라고 부르겠다고?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자랑스레 ‘술 취한 이’라고 소개할 사람들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다 철렁하다. 더구나 rice는 쌀을 먹고 사는 동양인을 비하할 때 사용되는 속어이기에 ‘술 취한 동양인’이라고 아예 공개방송을 하는 것 같아 더욱 찔린다.

Oriental은 동양이라는 뜻이지만 내면에는 서양과 견주어 비하하는 뜻이기에 그 말의 사용도 규제되는 판인데, 하물며 우리의 대표 브랜드 술인 막걸리를 부정적인 단어와 최악의 이
미지와 연관시킨 것이 놀라울 뿐이다.

색깔의 차별화를 강조한 Creamy rice wine이나 milky rice wine은 어떨까 싶다가, 햄버거를 햄버거, kfc를 kfc, 스타벅스를 스타벅스라고 부르듯 막걸리는 왜 막걸리가 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문득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르며,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었을 때만이 누구에게 가더라도 그 의미가 살지 않을까 싶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지 않던가?

김영란
재미교포ㆍ북산책 대표


이 글을 주간 식품저널 6월 9일자에 보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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